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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관람기

by K.Zeff 2017. 12. 21.

현생에 치여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하 경창길)과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하 혐마일)을 본지 일주일만에 리뷰를 남겨본다. 실은 이미 왜곡되고 지워졌을지도 모를 기억을 그나마 좀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기는 거지만 ㅎㅎ


연극엔 큰 취미가 없는 내가 경창길을 보게된 건 순전히 경창길에 등장하는 배우 중 한명의 팬인 친구 덕분이었다. 아마 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연극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뮤지컬과는 또 다른 연극의 매력을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2017년 12월 16일에 본 경창길 캐슷은 남자 종철 역에 이주원 배우님, 여자 선미 역에 주인영 배우님이었다.



선착순으로 자리를 받을 수 있어서 일찍 가서 첫번째로 자리를 받아 맨 앞자리 한 가운데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었는데, 소극장 연극이어서인지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가 진짜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였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 시야를 막는 게 없다보니 좀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역시 영화 빼곤 뭐든지 앞자리가 최고인 것 같다 ㅎㅎ


스토리는 간단히 가난하지만 서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 부부에게 아이가 들어서면서 생기는 갈등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슬펐다. 아이를 가졌지만 돈이 없어 맘껏 기뻐하지 못하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두 부부가 버는 돈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력이 낮아 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부부, 비정규직에게 출산/육아 휴가란 바랄 수도 없는 것이기에 아내는 아이를 낳으려면 일을 그만두어야하고,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는 두 사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남편은 아내를 설득해 아이를 지우려했지만, 아내는 소중한 아기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너무 슬픈 극이었고, 보는 내내 비참했고, 안타까웠다.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아라 낳아라 하지만 실상 아이를 낳는 것과 낳고난 그 이후의 삶은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걸로 이겨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이 연극은 그런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이 극은 이미 10년 전에 무대에 올려졌다고 하는데 왜 지금까지 이 극에 이렇게나 공감이 가는걸까. 


연극 경창길은 프란츠 크사버 그뢰츠라는 독일의 극작가의 작품을 극단 산수유의 대표인 류주연 연출님이 번안해 무대에 올린 극이라고 한다. 그 어떤 이가 봐도 이 극은 한국 사람이 만들어 올린 극이라고 여길 정도로 디테일하게 로컬라이징 되어 있어 류주연 연출님의 연출력에 정말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 배우들의 연기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경상도 남자의 행동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이주원 배우님과 바보스러울정도로 순수한 선미를 표현해낸 주인영 배우님의 연기가 너무 현실감이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몰입할 수 있었다. 씬이 넘어가는 그 사이에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시계소리와 함께 배우들이 직접 무대를 바꾸는 부분이 없었다면 중간에 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 잠깐의 휴식타임이 "자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 연극이에요" 라고 귓속말을 해주는 기분이었달까? "아 맞아. 이거 극이었지" 하고 잠깐 정신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었다면 종철은 아이가 생겼다는 선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과 아내를 닮은 예쁜 아이가 태어난다는 생각보다 현재의 힘겨운 삶이 더 무거워진다는 걸 바로 계산해낼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그려진 반면, 선미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세상물정 모르고 마냥 기뻐하고 슬퍼하게끔 그려졌다는 점이다. 약 10년 전의 작품이다보니 이런 인식이 녹아난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정적이다'라는 세간의 남녀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이 그대로 녹아났다는 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경창길을 보고 나서, 부랴부랴 혐마일을 보기 위해 두산아트센터로 향했다.



마츠코 역을 맡은 박혜나 배우님은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멋진 배우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기대 그 이상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올해 본 뮤지컬이 레베카와 혐마일이라는 게 참 기분좋게 남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창작뮤지컬이었다. 심지어 난 창작뮤지컬은 잘 보지않는 편인데도. 


혐마일 스토리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알 수 있기 때문에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패스. 


원래 공연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일이 거의 없는 나지만 혐마일을 보면서는 정말 많이 울었다....랄까 울음이 후반부에 많이 몰리긴 했지만 ㅋㅋㅋ;;

마냥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었다. 대체 마츠코는 왜 저렇게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 배신당하는 걸 반복하면서도 남자에 의지하면서 저렇게밖에 살지 못했나라는 안타까움과 답답함과 왜 남자들은 마츠코를 비참하게밖에 만들지 못했나 하는 분노, 그리고 마츠코의 인생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박혜나 배우님이 정말 심각하게 연기를 잘했다. 그야말로 마츠코 그 자체였다. 일그러뜨린 얼굴에서도 그래도 다시한번 시작하자, 다시한번 미소지어보자 하며 짓는 그 억지 미소가 사람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폭발적인 성량과 가창력은 기본, 맑은 두성 고음과 소울풀한 발성도 낼 수 있는 싱어라는 것도 느꼈다. 쇼 역할을 맡은 정원영 배우님 역시 마츠코의 심리에 다가서다 못해 동화되는 과정을 잘 그려낸데다 마찬가지로 넘버를 너무 잘 소화해내서 감탄했다. 또 메구미 역의 정다희 배우님의 폭발적인 가창력에도 반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박혜나 배우님이나 정원영 배우님, 정다희 배우님의 캐슷은 보게되지 않을까 싶다. 실은 더이상의 입덕은 안돼...라면서 나 자신을 말려봤지만 마츠코를 보고 박혜나 배우님에게 입덕하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기에(?) 순순히 입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흠흠. 

내가 봐왔던 뮤지컬은 메인 멜로디가 있고 그 멜로디가 변형되면서 극이 진행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혐마일은 메인멜로디라는 게 딱히 없이 각각의 넘버가 2~3번씩 반복되는 타입이어서 넘버의 연결이 정돈되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각각의 넘버들이 다 주옥같은 곡들이었고, 두번세번 다시 들을 가치가 있었다.(그러니까 빨리 OST 녹음해서 발매해주세요)


연출도 훌륭했다. 무대를 평면적으로만 다룬 게 아니라 위 아래 구석구석 빼먹지 않고 잘 다뤄준 것도 좋았고, 방이라는 하나의 무대장치로 마츠코의 방, 쿠미의 방, 교도소 등등을 표현해낸 것도 좋았다. 특히 낮이 된 밤 넘버에서 마츠코를 포함해 모든 배우가 열심히 춤을 추는 장면에서 바로 옆에서 춤을 추는 쇼에게도 조명이 가는데 마츠코에게는 전혀 조명이 떨어지지 않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지게 살아가기 시작한 메구미와 철저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마츠코를 극명하게 대비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좀 아쉬웠던 건 내가 원작을 알지 못해 무대에 떠오르는 사건개요를 좀더 자세히 읽고 싶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할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것이나, 등장인물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잘 안 들리는 음향이었다. 왜 우리나라 극장들은 음향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건지 어떤 뮤지컬을 보든 음향만 생각하면 한숨밖에 안 나오는 듯 하다. 일본에서는 가수가 마이크 하나 없이 조곤조곤하게 노래를 불러도 객석 저 끝까지 들리던데.....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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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극 모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서 내가 서울 사는 사람이었다면 몇번이나 재관람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돈은 없지만 만족감은 컸을텐데 내가 지방러라는 현실이 아쉽고도 다행이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극들이었다. 경창길을 보면서는 연극의 매력에 한발짝 더 다가간 것 같았고, 혐마일을 보면서는 지금껏 알지못했던 배우들에게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어떤 연극/뮤지컬을 볼까 고민하고 있다면 경남 창녕군 길곡면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특히 여자라면 꼭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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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마일을 본다면 꼭 프로그램북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



원래 극을 보면 어떤 극이든 프로그램북을 구매하는 편이긴 한데, 혐마일 프로그램북은 정말 혜자다. 두께도 두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진들이 정말 혜자다. 가사도 있는데다 사진이 없는 페이지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다른 뮤지컬 프로그램북도 이렇게만 나오면 정말 좋을텐데...

두께만 보면 몇만원을 할 것 같지만 만이천원인가 만삼천원인가...? 아무튼 저렴한 편이라고 느껴진다.


뮤지컬의 여운을 좀더 느끼는데는 역시 굿즈만한 것이 없으니, 그리고 뮤지컬의 정보가 담긴 프로그램북만한 것이 없으니

혐마일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프로그램북을 구매하는 걸 강추한다.